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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제목 이스라엘 그곳을 보며
작성자 김부옥 작성일 2008-12-01 13:49:47

요란 장식으로 날 괴롭힌



흥겨운 이스라엘 전통춤



디베랴-갈릴리 바다






갈릴리의 햇살



사해의 블루


광야만 광야만 

보다가

드디어 디베랴 바다라고도 하고 디베랴 호수라고도 하는 갈릴리에 도착하는데

 그 느낌은 정말 특별했다.

눈이 내내 목마르다가  눈이 물을 마시는 느낌, 온 몸이 물의 지역에 온 걸 느끼는 거다.

히야!!!!   사막 끝에 눈앞에 펼쳐진 커다란 물, 그야말로 생명수 바다였다.

지역을 들어서는 입구에 신선하게 하늘거리고 있는 아름다운 꽃들은 우리를 반기는 아름다운 얼굴들 같다. 세상에 그렇게 꽃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은 처음이었다.

정말 언제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대추야자 나무들이 주루룩 서 있고

 

이곳이 바로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그곳이라니 감격스럽다.

이곳을 서로 차지하려고 역사상 수많은 나라가 싸웠다니 정말 와 보니 그럴 만하다.

사막, 광야만 이어지다가 이런 바다를 만나니 왜 안 그렇겠는가.

 

아름다운 성 같은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왜 이리 미로 같은지

그래도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온갖 과일을 먹으며 여행의 피로를 푸는데

통유리창으로 내려다보는 갈릴리 바다의 낙조가~

그리고 그 바다에 고요히 떠가는 유람선 두 척이 만나는 순간을 찍으려고 밧데리가 닳은

카메라를 그렇게 간절히 켜고 켰건만 꺼지고 겨우 한 컷의 사진을 건졌을 뿐이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지 그 사진을 보고 또 보며 그 순간의 감동을 떠 올릴 뿐이다.

까만 올리브가 참 시큼하지만 맛있다.

비록 여행의 일정에 

쫓기고 부대껴 짐짝이 된듯해도 이런 순간엔 왕이 된 듯하다.

 

다음날 아침의 일출은

정말 다정하고 고요했다. 베란다에서 열심히 실컷 찍고

갈릴리 호수로 배를 타고 나갔는데

주님이 부르신 베드로와 요한을 연상시키는 분들이 작업복을 입고 인사를 했다.

 

그 아름다운 갈릴리 바다

선상예배를 드리는데 참 은혜가 넘쳤다. 그 밤에 주님을 배신하고 다시 처절하게 좌절한 심정으로 배에 올라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주님, 내 양을 먹이라 사명을 주신 주님, 이제 베드로는 겸손하게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나이다. 차마 대답도 제대로 못한다. 이런 모습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시몬아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이렇게 아프게 하다니

눈물을 흘리며 찬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스라엘 전통 춤

정말 신나고 즐거운 천국의 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사진 속에만 남아있는-

사진 찍다 나도 추려고 내려오니 끝나버렸다.

 

건너 편 내려 팔복 교회에서 산상의 울림을 이용해 설교를 하시는 주님을 상상하고.

베드로 장모교회 들어가다 옷이 짧다고 지적 받아 얼른 수건 빌려 어깨 가리고

보수적 문화를 체감했다. 다른 사람 땐 모르겠더니 약간 반발심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야? 45도 넘는 이런 더위에 외국인들인데.

가나 포도주 교회에서 첫 기적을 결혼잔치에서 베푸신 뜻이 특별하다는 말씀에 남편 생각을 하며 미안한 마음(잔소리 했던, 짜증냈던 거).

 

 스파게티 먹으러 정신없이 시장 골목을 따라가다 무화과를 사고 싶었는데, 어린 시절 고향 광주에선 흔하던 무화과가 서울선 수입 말린 것 뿐이라, 아 정말 영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급하게 쫓아가느라 살 수가 없었다. 엉엉~ 정말 그 아린 맛이 그리워. 항암 작용도 좋다는데

 스파게티보다 곁들여 나온 납작한 빵이 더 맛있었고 수녀를 포함한 유대인 가족 형제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예수탄생기념 교회에 가서 느낀 건

물론 우리와 다른 예배당 풍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리스 정교회의 낡고 요란하고 정신없는 장식물들 때문에 관광지 같아서

무슨 절의 불상들 장식마냥 마음에 경건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너무 죄송할 정도였다.

세상에 이곳이 어딘가,  우리 소중하신 예수님이 탄생하신 마굿간이라는데

그런데 내 마음이 이렇게 싸늘하다니

이것저것 붙여놓은 너절한(너무 죄송한 표현이다) 장식들을 다 빼내든가 차라리 옆에 다른 조그만 건물을 지어 마굿간을 재현해놓는 게 낫겠다. 어이구 정작 어린시절 크리스마스 때 성극에서 상상하며 보던 무대위의 조잡한 마굿간이 더 은혜스러웠다.

인간의 종교심이 점점 더 자기만족적 형상을 늘려가면 다른 사람에겐 신의 영광을 가리는 구실밖에 못하는 것 같다. 별 모양이 없더라도 이곳이 바로 그곳이라는 푯말만 있어도 우린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이런 느낌은 십자가 골고다 교회에서 절정에 달했다.

정말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은혜스러워서가 아니라 오만 종교행위가 난무하는 곳에 시멘트 건물안에 휘황한 장식물들에 그 어디에서도 주님의 체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환멸이 가득 찼다. 상상 속의 골고다는 먼지 바람만 부는 언덕위에

이스라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가슴 아픈 황량한 산이었는데

그곳에서 그분의 울부짖음을 들으려 했는데

이곳이 정말 그곳이 아닐 거라는 확신만이 생기는,

이런 오만 잡동사니가 장사진을 치고, 올라오는 길은 순례자들을 겨냥해 장사하는,

구역질나는 곳이 골고다라니.

주님이 걸어가시던 성전도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어디서도 신령과 진정의 자취가 없는

그래서 장사하는 굴혈을 뒤집어엎으신 것이리라.

 

차라리 은혜는 인적이 드문 승천교회, 주기도문 교회, 눈물 교회에서 받았다.

눈물 교회 입구의 가시 나무에서,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에 쓰인 가시크기를 보니 가시의 길이가 중지 손가락만 했다.

 

 오만 인종의 전시장 같은 통곡의 벽 또한 참 왜곡된 이스라엘의 역사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씁쓸한 장소였다. 그래도 이곳이 하나님을 부르는 참된 기도의 장이 되길 바라며 기도를 했다. 진정한 메시야를 알고 받아들이는 민족이 되게 해 달라고.

 

마가다락방, 겟세마네 기도교회, 스테반 순교기념 교회 옆 2000년 된 올리브나무들

참으로 역사적인 현장에 서서 이스라엘 황금문을 바라보고 해가 지는 이스라엘 시내 건물 위에 보름달이 뜬 걸 보니 주님께서 이곳을 따뜻하게 품고 계시는 것 같다.

 

다음 날 표지판엔 제리코 라고 써 있는 여리고를 들어가는데 얼마 전까지 이곳은 위험지역이라 못들어 갔던 곳이고 지금도 현지 주민들은 여기서 나오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총격전의 흔적이 건물 곳곳에 남아있고 역사와 현재가 눈앞에서 교차하는 여행은 계속된다.

삭개오의 뽕나무가 사실은 다른 나무라고, 엘리사의 샘을 거쳐 다시 시작된 광야길, 소돔의 롯의 아내 돌기둥 지나 나는 다시 싯딤 나무와 사랑에 빠졌다. 싯딤의 오만 형상들을 찍느라 정신없이 카메라를 찍다. 그 끝에 담는 사해의 화려한 블루

여행은 과거로의 상상과정이다. 그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과거는 의미가 없다.

은혜는 내 마음 속에 준비된 기억으로 자가발전이 되는 것,

오직 자연물만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교량구실을 한다.

특별한 유적보다는 아름다운 자연만을 잘 가꾸어놓기만 해도 그곳을 찾는 이들은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성지 순례는 물론그 자체가 특별한 경험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장소의 특별함이 아니라

평소에 밀어 놓았던 나 자신과의 만남, 그것은 곳 내안에 기다리시던 주님과의 은밀한 만남의 시간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늘 나와 함께 계시던 분을 의식하고 그분과 대화하는

우리가 사는 이 삶의 현장이 진정한 성지이다.

그것이 가서 제자 삼으라시던 그분의 뜻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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