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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방송 성서의 땅 칼럼

제목 [2019-02-07] 그리스16-데살로니가
작성자 로뎀투어네트워크 작성일 2019-09-03 11:48:55

▲ 그리스 데살로니가 화이트타워

 
성서의 땅 칼럼, 로뎀성지순례 유재호 대표입니다. 이 시간은 성서의 배경이 된 땅을 함께 다니면서, 성경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시간입니다. 그리스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 현대 그리스어의 명칭으로는 테살로니키입니다. 이 데살로니가는 아테네에서 북쪽 약 530km,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km 지점에 위치하는 항구도시입니다. 그리스 전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고, 그리스 북부에서는 가장 큰 도시로 그리스 북부 지역의 중심 도시입니다.
테살로니키, 데살로니가라는 이름은 온천이라는 뜻의 테르마, 또는 데르마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라고 합니다. 다른 학설은 그리스의 위대한 통치자였던 알렉산더 대왕과 연관이 있는데, 이 지역은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알렉산더 대왕이 동쪽으로 정벌을 떠날 때, 본국 마케도니아의 통치를 자신의 측근이었던 안티파트로스에게 위임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 당시의 페르시아는 소아시아라 불리던 지중해 지역부터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제국이었는데, 알렉산더에 의해 이집트와 함께 점령당하고 맙니다. 이런 정복 전쟁 가운데, 알렉산더 대왕은 주전 323년경 본국으로 돌아 오지 못한 채 열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마케도니아 본국의 통치를 놓고 치열한 권력 투쟁이 벌어져서 총독 안티파트로스의 아들인 카산더 장군이 권력 투쟁의 승자로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카산더는 이복 동생이었던 테살로니케를 왕비로 삼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적이었던 알렉산더 4세 및 알렉산더 대왕의 왕비, 대비를 차례로 제거해서 왕권을 공고히 하였다고 합니다. 이 후에 카산더 왕은 흉융해진 민심을 바로 잡기 위해서 에게해 연안에 큰 항구 도시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시의 이름을 왕비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가로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건설 된 도시는 로마 제국을 거쳐 비잔틴 시대까지 번영하게 되는데,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다음으로 큰 도시로 번성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 당시에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현재 지명이 까발라인 네압볼리 항에 상륙하여 인근에 있던 빌립보에 복음을 전파한 후에 이 곳 데살로니가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회당에서 3 주간 가까이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당시 유대교를 믿고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았던 유대인들이 바울을 시기하고 폭동을 일으키고 사도 바울을 박해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피하여 베뢰아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베뢰아에서도 복음을 계속하여 전파하게 됩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바울을 핍박합니다. 사도 바울은 또 다시 베뢰아를 떠나 고린도로 옮겨 갑니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의 2, 3차 전도여행 중에 사도 바울의 전도를 받아 설립이 됩니다. 현재 데살로니가에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교회들이 약 20여개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 되기 직전 순교한 데메트리우스를 기념하여 세운 성 데메트리우스 교회가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다음 시간에도 그리스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서의 땅 칼럼, 지금까지 로뎀성지순례 대표, 유재호 권사였습니다.